산업화 시대, 수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창고와 공장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천덕꾸러기’처럼 버려졌다. 조선, 항만 물류 산업이 모두 정체되면서 유휴공간이 된 것이다. 그렇게 활력을 잃고 잊힌 공간이 도시재생에 관한 관심과 노력에 힘입어 하나둘 문화예술산업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무대는 부산 속 ‘작은 섬’ 영도. 수출로 금자탑을 쌓은 화려한 과거를 뒤로 하고, 영도 곳곳에는 아무도 쓰지 않고 굳게 닫힌 채로 녹만 슬어 가는 공간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영도구 청학동 ‘끄티(GGTI)’와 봉래동 ‘무명일기’ 역시 그런 곳들 중 하나였다.
조선·항만 쇠락에 버려진 유휴공간 청학동 ‘끄티’ 봉래동 ‘무명일기’ 등
공연·축제 공간 재탄생 매력 발산
먼저 ‘끄티’. 영도 구석 끝에 있다고 해서 김철우 RTBP 얼라이언스 대표가 붙인 이름이다. 1979년 금호타이어 물류 창고 중 하나로 만들어진 이곳은 이후에도 조선·항만 물류 창고로 쓰이다 꽤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인근에서 조선기자재 엔지니어링 사업과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에 힘쓰던 김 대표가 이 공간에 매료돼 올 4월 매입했다.
항만 물류 창고답게 언제든 배에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도록 창고는 바다 쪽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다. 이를 살려 지금은 바다를 등지고 공연할 수 있는 무대로 활용한다.
김 대표는 “기억, 시간을 전달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재미가 있어서, 전시·공연에 필요한 장비를 들여온 것 외에는 거의 고치지 않았다”면서 “다양성을 실험하는 실험실로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끄티’에서는 미디어 아트, 공연, 전시가 종종 열린다. 지난 19일에는 부산 장애 예술인 쇼케이스와 네트워크 파티 ‘일각(一角)’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무명일기’는 좀 더 친근한 공간이 목표다. 사회적기업 ‘키친파이브’ 오재민 대표가 준비 중인 이곳은 음식과 디자인, 문화가 있는 곳이다.
직사각형으로 시원하게 뚫린 창문 밖으로 영도 바다가 보였다. 창고를 가로질러 적혀 있는 ‘안전제일’ 글귀는 이곳이 얼마 전까지 조선공업사로 물건을 생산하던 산업 현장이었음을 증명한다.
오 대표는 “디자인 회사와 푸드트럭을 운영했던 노하우를 살려, 누구나 언제든 방문해도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무명일기’는 31일 오픈과 함께 첫 행사로 ‘Thank you 2018, Welcome 2019’를 갖는다. 31일에서 새해 첫날 사이 사람들과 해넘이와 해맞이를 함께하며 밤새 책을 읽는 문화행사라 눈길을 끈다.
‘무명일기’와 함께 봉래동 물양장 창고군에 이웃한 ‘창의산업공간’은 영도구와 영도구 대통전수방사업단이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벌써 수차례 프리마켓인 ‘M마켓’이 열렸다.
영도 창고군 지붕이 알파벳 ‘M’ 모양과 닯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 봉래시장과 연계한 봉래마켓을 열기도 하고 영화제, 어린이잡화점 등 지역 축제에 활용하기도 한다. 마켓이 열리지 않을 때는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비정기적으로 개최한다.
‘깡깡이예술마을’(대평동)과 ‘흰여울문화마을’(영선동)로 이미 부산의 주목받는 문화 명소가 된 영도. 이제 버려졌던 산업화 시대의 유물도 새로운 문화예술산업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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