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0. [금] | 부산일보 39면 로컬터치.
김태만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5월 마지막 날, 늦은 밤이었다. 어둠 속으로 하나둘 모여든 100여 명의 젊은이가 공장 안을 메웠다. 혼돈스러운 조명과 귀를 찢는 음향 속에 초현대적 감각의 복장을 한 국내외 젊은 남녀들이 청중과 관객 구분도 없이 한데 엉켜 음률에 빠져들었다. 이미 자정을 넘겨 새벽을 향하는 시각, 바다로 트인 마당엔 비릿한 갯내음이 화물선 불빛에 흐느적거렸다. 폐공장을 개조한 간이 공연장에 초청장도 없이 제 발로 찾아와 벌이는 '오디오-비주얼 공연'을 겸한 '테크노 파티'였다. '공연장'이 아니라 허름한 '공장'에 불과해 이름도 '끄티'라 지어 부를 뿐이다. 지인들의 프라이빗 파티치고는 분위기가 뜨겁고 흥겹다. 바닷가에 버려진 외진 폐공장의 화려한 변신이다.
사실, 영도는 조선산업 침체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인구 격감과 초고령화를 체험하는 지자체 중 하나다. 불과 몇 년 전에도 부산의 조선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10%를 담당했다. 하지만 최근 세계 경기 침체와 국제 물류 격감으로 한때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켰던 한국의 조선업은 위기를 맞았고, 그 직격탄을 영도가 맞았다. 조선업의 불황은 조선업 구조조정을 강요하며 조선소 폐업과 부지 매각으로 이어졌다. 2015년 1만여 명에 육박했던 영도의 조선업계 종사자가 2018년 현재 40%가 줄어든 6000여 명에 불과하다. 영도의 주류 산업이었던 조선업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련 기반 인프라와 관련 중소업체가 흔들렸다. 노동자들은 조선소를 떠났고, 영도 인구는 격감했다. 이쯤 되면 '말뫼의 눈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영도의 위기는 부산의 위기이고, 부산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폐공장의 변신 '끄티'서 발견한 희망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생명력 찾아
조선산업 침체 직격탄 맞은 영도는
해양문화예술 통한 도시 재생 적지
그러나, 폐허 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듯 희망은 자란다. 그 희망의 끝자락을 '끄티'에서 발견한다면 과장일까! 이 공간에서 오디오-비주얼 공연, 테크노 파티, 건축설계전시, 카누교실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벌어진다. 아직은 정식 공연장이 아닌 비인가시설로 예행연습 중인 공간이지만, 폐산업시설 공간을 문화예술적으로 생명력을 부여한 모범 사례다. 이런 예들은 더러 있다. 연안여객터미널 맞은편의 놀고 있던 공장 창고를 재활용한 '비욘드 게러지'가 임대료 상승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재오픈 했다. 고려제강이 와이어공장을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무상대여 해줬다가 차츰 막대한 시 예산 지원을 받아 새로 단장한 'F1963'도 있다. 탁월한 장소성과 공간성을 지녔지만, 공적자금이 투입된 공간답지 않게 지나치게 상업화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노후 도시에 재활력을 줄 것은 틀림없다. 특히 영도는 노후화한 산업시설의 재생에 주목해야 한다. 포항은 2019년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폐조선소를 이용한 해양문화예술관광도시' 사업이 선정되어 3000억~4000억 원의 막대한 국비 지원을 받을 예정이란다.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부산항대교를 건너와 청학동 아랫길 해안로를 따라 이어지는 5~6개의 중소 조선소 5만 평가량의 땅이 텅 비어 있다. 배후 조선기자재 공장이나 창고를 합치면 면적은 훨씬 넓어진다. 이것이 영도가 조선산업의 쇠퇴를 대신해 해양문화예술콘텐츠를 통한 도시재생의 적지일 수 있는 조건이자 까닭이다.
영도의 도시재생사업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최근 들어 산복도로를 따라 재미있는 카페들이 즐비해 남녀노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카페로 변신한 '신기산업', 엔틱을 감상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카린', 그리고 최근에는 오랜 시간 비어 있던 수영장을 개조한 봉래동 '젬스톤' 등이 영도의 이미지를 혁신하고 있다. 예술가와 문화기획자들이 낡은 도시로 귀환해 도시에 활력을 재충전하고 있다. 자본이 아니라 주민이 주인인 재생이라야 희망이 있다. 문화와 예술이 더는 도시재생사업의 객체로 밀려날 게 아니라 주체로 서야 한다. 예술이 도시 활력의 신성장동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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