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하이브리드 기획자 김철우

[나는 문화기획자다] 1. 하이브리드 기획자 김철우


폐창고에서 발견한 희망… 영도를 다시 그린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부산 영도에 버려진 물류창고가 지난해 4월 재생 문화공간 ‘끄티’로 재탄생했다. 김철우 대표가 ‘끄티’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 대표 뒤로 보이는 조형물이 여상희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이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을 과연 ‘문화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도시’ 부산의 성장기를 살펴보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정도이지 싶다. 피란수도 시절에는 누가 뭐래도 문화가 꽃핀 ‘문화 도시’였다. 지금 부산은? 오페라하우스, 부산국제아트센터 등 인프라는 속속 들어서는데 ‘메이드 인 부산(Made in Busan)’ 콘텐츠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문화기획자에 주목하게 된 계기다. 부산에서 고군분투하는 문화기획자를 소개하고, 이들의 활동이 부산에서 선순환하기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기획했다. 격주 목요일 게재한다.​


재생 문화공간 ‘끄티’작년 4월 오픈

졸업작품 전시·스타트업 투자설명회 등

30여 차례 다양한 행사 열어 ‘호평’

문화예술공간·도시재생 디렉터

“영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 관심”


허투루 쓴 공간이 하나도 없다. 재생 문화공간 ‘끄티(GGTI)’ 입구 앞 길게 늘어 뜨려 있는 폐그물 안에 신문지가 가득 들어 있다. 옛 물류 창고의 잔존물이라고 생각했던 구조물은 알고 보니 여상희 작가의 설치 미술 작품이었다.​


부산 영도구 청학동에 자리잡은 ‘끄티’는 1979년 금호타이어 물류 창고 중 하나로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조선·항만 물류 창고로 쓰이다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창고 앞은 바로 바다. 한때 이곳에 가득 쌓였던 타이어는 스무 걸음이면 맞닿는 바로 앞 바다에서 배에 실려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리모델링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창고의 이런 공간성을 보존하기 위해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우리말로 옮기면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뜻인 RTBP(Return to Busan Port) 얼라이언스와 ‘끄티’ 김철우(44)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영도 봉산마을 민간 총괄디렉터도 맡고 있다.


‘하이브리드’ 기획자​


김 대표에게 영도는 익숙한 곳이다. 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원래는 배를 타던 아버지의 일터였다. 배에서 내린 아버지는 지금의 깡깡이마을 근처에서 선용품상회를 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영도를 드나들었다. 영도는 지금 김 대표의 일터이기도 하다. 그는 “친숙하고도 애증이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끈끈한, 그런 에너지가 혼재된 곳이 제가 봤던 영도입니다.”​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 대표는 중앙대 영화학과에 진학하면서 잠시 부산을 떠난다. 공부를 곧잘 했던 터라 보수적인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졸업 작품인 독립영화 ‘된꼬까리’(2001)는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등에 초청받았다.​


서른이 되던 해 다시 부산에 돌아왔다. 영화가 자본 권력에 휘둘리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고, 아버지가 쓰러져 자연스레 집안일(선용품 회사)을 거들면서 창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술이 사람의 생활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안전’을 콘셉트로 조선기자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 부경대 조선공학과에 진학했고, 졸업을 한 학기를 남겨두고 동의대 대학원 조선공학과에 들어가 석사를 마쳤다. 조선업 순풍을 타고, 창업한 조선기자재 엔지니어링 회사도 잘됐다.​


김 대표는 “10년은 조선업에 집중하자고 결심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그런데 문화예술에 대한 목마름은 늘 있어서 디제이, 연주자, 미술작가들과 즐겁게 잘 지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게 큰 자산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후 조선업 불황이 시작됐고, 사무실의 남는 공간을 스타트업들에게 빌려줬다. 자연스레 사업에 필요한 조언을 하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게 됐다. 지난해 회사 사무실 근처 산책길에 발견한 안 쓰는 물류 창고를 발견하고, 매입하면서 지난해 4월 ‘끄티’를 만들었다. 영화 감독에서 사업가로 또 스타트업 조언자로, 이제는 문화예술공간 디렉터이자 도시재생 디렉터로, 김 대표는 그야말로 ‘하이브리드 기획자’다.​


도시 감독 꿈꾸는 라이프스타일 디렉터​


“도대체 뭐하는 분입니까?” 자주 듣는 질문이라며 김 대표가 웃었다. “농담 삼아 고물상이라고 하고 어떤 때는 한량이라고도 한다”고 장난스레 말하다가도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을 ‘감독’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진지하게 전한다. RTBP 얼라이언스는 ‘도시문화 혁신 플랫폼’이고 하는 일은 라이프스타일 디렉터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아직은 옛 부산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영도가 김 대표에게는 큰 주제다. 그는 “영도는 부산의 근대화, 산업화 시기 항구가 될 수 있도록 방파제 역할을 하던 곳”이라며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영도를 즐겁고 재밌고, 근사한 곳으로 만드는게 이 섬을 대하는 예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인구 20만이 넘는 영도였지만 지금은 한창 때의 60% 수준인 12만 명으로 내려앉았다. 영도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봐도 누구나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드는 곳, 그런 영도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이 요즘 김 대표의 최대 관심사다.


​‘끄티’에서는 지난해 12월 19일 장애예술인 쇼케이스를 비롯해 대학 졸업작품 전시회, 테크노파티, 주주총회, 스타트업 투자설명회 등 30여 차례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김 대표는 앞으로 이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아카이빙한 피란수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가치를 돈도 벌면서 창출하는 ‘소셜 임팩트(Social Impact)’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제성을 놓지 않기 때문에 커뮤니티 자생력도 높아지는 그런 도시재생과 기획을 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의 포부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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